[DAY10] 발도르차의 금빛 평원과 ‘비노 노빌레’의 고향, 몬테풀치아노

이탈리아 여행의 10일째 아침이 밝았습니다. 오늘은 이번 여행의 하이라이트 중 하나인 발도르차 평원(Val d’Orcia)을 온전히 누비는 날입니다.

🥗 여행자의 아침

아침은 어제 시에나의 까르푸에서 미리 장 봐두었던 신선한 샐러드와 담백한 빵으로 가볍게 시작했습니다. 토스카나의 아침 공기를 마시며 숙소에서 여유있게 즐기는 소박한 식사는 그 어떤 호텔 조식보다 풍성하게 느껴집니다.

🌲 사이프러스 나무가 그린 지그재그, 발도르차의 미학

가장 먼저 향한 곳은 토스카나를 상징하는 그 유명한 지그재그 사이프러스 길 뷰포인트였습니다.

사실 발도르차 평원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이유는 단순히 ‘예뻐서’가 아닙니다. 이곳은 14~15세기 시에나 상인들이 ‘이상적인 르네상스 풍경’을 만들기 위해 인위적으로 가꾼 ‘농업 경관’이기 때문이죠. 척박한 점토질 토양(Creta Senese) 위에 인간이 미적 감각을 더해 완성한 대지 예술인 셈입니다.

그런데 막상 가까이서 본 사이프러스 나무들은 생각보다 무척 싱싱하고 매끄러워 보였습니다. “이 정도 풍경이 되려면 수백 년은 걸렸을 텐데, 왜 이렇게 젊어 보이지?” 하는 궁금증이 생겨 열심히 찾아봤더니 재미있는 사실들을 알게 되었습니다.

토스카나 발도르차 평원의 구릉과 사이프러스 나무가 늘어선 지그재그 도로 전경

사이프러스(Italian Cypress)는 유전적으로 옆으로 퍼지지 않고 위로만 곧게 자라는 성질이 있습니다. 그래서 수십 년이 지나도 뚱뚱해지지 않고 늘씬한 기둥 모양을 유지하죠. 우리가 사진에서 보는 10~15m 높이의 위엄 있는 모습이 되려면 최소 30년에서 50년은 꼬박 자라야 한다고 하네요.

이 풍경은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관리되기 때문에 병들거나 노쇠한 나무는 마을 차원에서 즉시 새 묘목으로 교체합니다. 우리가 본 나무들도 1920~30년대 풍경 복원 사업 때 심어진 것들이 많으니, 나무 입장에서는 한창때인 ‘중장년층’인 셈입니다.

우리 부모님 세대보다 더 긴 세월을 이 자리에서 버티며 바람막이(Windbreak)가 되어주고 땅의 경계를 지켜온 이 나무들이 새삼 다르게 보였습니다.

이 평화로운 풍경을 우리가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만큼 즐길 수 있다는 것. 그것이 바로 렌트카 여행이 주는 최고의 사치가 아닐까요?

🏰 ‘피렌체를 닮은’ 고고한 언덕 마을, 몬테풀치아노

다음 목적지는 구릉 위 요새처럼 우뚝 솟은 몬테풀치아노(Montepulciano)입니다.

마을 입구에 위치한 공영 주차장(P8)에 차를 세우고 본격적인 투어를 시작했습니다. 이곳은 시간당 1.5유로 정도의 요금이 부과되는데, 저희는 2시간 정도 머물 계획이라 3유로를 미리 결제했습니다. 주차권 자판기에서 나온 영수증을 차 안 대시보드 위에 잘 보이게 올려두는 이탈리아식 주차 문화를 경험하니 정말 현지인이 된 기분이 들더군요.

발도르차의 마을들은 외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대부분 언덕 꼭대기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몬테풀치아노 역시 해발 600m가 넘는 높은 곳에 위치해 마을 전체가 천연 전망대 역할을 하더군요.

마을 중심부인 피아차 그란데(Piazza Grande)에 들어서니 묘한 위압감이 느껴졌습니다. 정면의 성당은 거친 돌 질감이 그대로 드러난 미완성의 로마네스크 양식인데, 그 옆의 시청사(Palazzo Comunale)는 피렌체의 팔라초 베키오(Palazzo Vecchio)와 똑 닮아 있었습니다. 과거 시에나를 꺾고 이곳을 차지한 피렌체가 승전보를 알리기 위해 의도적으로 닮게 지었다는 역사를 알고 나니 마을의 고집스러운 분위기가 이해가 갔습니다.

몬테풀치아노 중심 광장인 피아차 그란데와 로마네스크 양식의 성당 건물

🍷 칸투치(Contucci) 와이너리: 수백 년의 세월을 마시다

몬테풀치아노 하면 와인을 빼놓을 수 없죠. 흔히 토스카나의 왕이라 불리는 BDM(브루넬로 디 몬탈치노)이 인지도 면에선 더 유명하지만, 이곳의 주인공은 ‘비노 노빌레 디 몬테풀치아노(Vino Nobile di Montepulciano)’입니다. 말 그대로 ‘귀족의 와인’이라는 뜻이죠.

우리는 마을에서 가장 오래된 가문 중 하나인 칸투치(Contucci) 와이너리를 방문했습니다. 작년 이탈리아 여행 때 방문했던 알리기에리 농가민박보다 훨씬 더 고전적이고 깊은 지하 저장고를 운영하고 있더군요.

수백 년 된 거대한 오크통들이 빽빽하게 들어선 어두운 터널을 걷다 보니, 시간마저 이곳에선 천천히 흐르는 것 같았습니다. 시음 후 마음에 드는 비노 노빌레 한 병(€38)을 구매했더니, 주인분께서 기분이 좋아지셨는지 다른 라벨들도 선뜻 내어주십니다. 아주 노련하게 장사를 잘하시더라고요. 덕분에 귀한 와인들을 실컷 경험해 볼 수 있었습니다.

☕️ 카페 폴리찌아노(Antico Caffè Poliziano), 절벽 끝에서의 쉼표

마을 구경의 마무리는 1868년에 문을 연 유서 깊은 카페 폴리찌아노였습니다.

격식 있게 차려입은 웨이터들이 분주히 움직이는 이곳은 아르누보 양식의 인테리어만으로도 방문할 가치가 충분합니다. 하지만 진짜 보석은 안쪽 깊숙이 자리한 절벽 테라스석입니다.

우리는 이곳에서 커피와 티라미수, 그리고 시그니처인 시나몬 커피(Caffè Cannella)를 주문했습니다(총 €24). 발도르차의 황금빛 평원이 발아래로 끝없이 펼쳐지는 풍경을 보며 마시는 에스프레소 한 잔.

비록 2시간 남짓한 짧은 만남이었지만, 구릉 위 와인 산지인 몬테풀치아노가 준 강렬한 인상은 이번 여행의 소중한 한 페이지로 남을 것 같습니다.

💡 여행자 팁: 몬테풀치아노는 오르막이 꽤 가파릅니다. 최대한 마을 상단 주차장(P1 혹은 P8 근처)에 주차하시는 것을 추천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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