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2주간의 긴 일정을 마치고 귀국하는 날의 기록입니다.
이번 여행은 ‘몸으로 느끼는 자연, 머리로 이해하는 문화’라는 테마로 구성되었습니다. 전반부에는 알프스의 장쾌한 대자연을 온몸으로 마주했고, 후반부에는 이탈리아의 깊은 역사와 문화를 탐구했습니다. 작년 여름, 돌로미티와 베네치아-베로나를 잇는 여정이 꽤 만족스러웠기에 올해도 비슷한 구성으로 여름휴가를 기획했지요.
돌이켜보면, 2주라는 시간 동안 체력 안배가 가장 큰 숙제였습니다. 작년 알페 디 시우시에서의 무리한 트레킹으로 이후 일정이 꼬여버린 경험을 교훈 삼아, 올해는 ‘강약 조절’에 심혈을 기울였습니다. 덕분에 큰 사고 없이 완주할 수 있었지만, 긴장이 풀린 탓일까요? 마지막 날 아침, 몸이 천근만근 무거워지며 감기 기운이 엄습해왔습니다.
1. 아들과의 작별, 그리고 각자의 길로
마지막 날의 가장 큰 걱정은 제 컨디션보다도 아들이었습니다. 우리는 귀국하지만, 아들은 홀로 튀르키예로 넘어가 일주일간 더 여행을 이어가야 했기 때문입니다. 혹여나 제 감기가 옮지는 않았을까, 혼자 떠나는 길에 아프지는 않을까 걱정이 앞섰습니다.
이른 새벽, 렌터카를 몰고 공항으로 향했습니다. 아들의 이스탄불행 비행기가 우리보다 일러 먼저 배웅을 마쳤습니다. 씩씩하게 출국장으로 들어가는 뒷모습을 보며, 부모의 걱정과는 달리 어느새 훌쩍 커버린 아들을 실감합니다. 부디 안전한 여행이 되길 마음속으로 빌었습니다.
2. 밀라노에서 싱가포르로: 비몽사몽의 비행
저희 부부는 오후 12시 45분 싱가포르행 항공편에 몸을 실었습니다. 운 좋게도 가장 앞 열, 다리를 쭉 뻗을 수 있는 좌석(Exit Row)을 배정받았습니다.
평소라면 쾌재를 불렀겠지만, 이미 몸살 기운이 온몸을 지배한 상태라 비행기를 탔는지 버스를 탔는지 모를 정도로 비몽사몽간에 이동했습니다. 으슬으슬한 한기까지 느껴져 기내 담요를 꽁꽁 싸매고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습니다.

3. 싱가포르 창이 공항: 계획과 현실 사이
다음 날 아침 7시, 싱가포르 창이 공항에 도착했습니다. 인천행 비행기는 저녁 10시. 무려 15시간의 레이오버(Layover)가 우리에게 주어졌습니다.
당초 계획은 야심 찼습니다. 짐을 맡기고 싱가포르 시내로 나가 마리나 베이와 주요 명소들을 둘러보며 미식 여행을 즐길 예정이었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냉혹했습니다. 바닥난 체력과 심해진 감기 몸살로 도저히 공항 밖을 나갈 엄두가 나지 않았습니다.
결국 모든 관광 계획을 전면 취소하고, ‘공항에서의 휴식’을 선택했습니다.
🌪 라운지 이용의 교훈: “기회는 한 번뿐이다”
몸을 누일 곳이 절실했던 저는 PP카드(라운지 이용권)를 사용해 휴식을 취하기로 했습니다. 도착한 터미널에서 가장 가까운 라운지를 급하게 찾아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막상 들어가 보니 중동/이슬람 스타일의 메뉴가 주를 이루는 곳이었고, 시설도 기대에 비해 다소 낡고 협소했습니다. 편안하게 수면을 취하기엔 부족한 환경이었죠.
“잠깐만 쉬고, 셔틀 타고 다른 터미널에 있는 더 좋은 라운지로 옮기자.”
이것이 패착이었습니다. 잠시 후 다른 터미널의 유명한 라운지로 이동해 입장을 시도했지만, ‘동일 날짜/동일 공항 내 1회 이용 제한’ 규정에 걸려 입장이 거절된 것입니다. 카드의 종류마다 다르겠지만, 제가 가진 혜택은 ‘하루에 한 번’이 원칙이었던 것이죠.
결국 갈 곳을 잃은 우리는 공항 공용 구역의 벤치 신세를 지게 되었습니다. “누가 공항 벤치에서 자나” 했던 그 모습의 주인공이 바로 제가 될 줄이야. 오한에 떨며 벤치에 누워있는 저를 위해 아내는 불편한 의자에서 쪽잠을 자며 계속 제 상태를 살폈습니다. 미안함과 고마움이 교차하는 순간이었습니다.

4. 공항에서의 소소한 위로: 미식과 바샤 커피
한나절 푹 쉬고 나니 저녁 무렵이 되어서야 조금 온기가 돌기 시작했습니다. 기운을 차리고 나니 허기가 지더군요. 시내에는 못 나갔지만, 공항 내 푸드코트에서 싱가포르의 대표 메뉴들로 늦은 점심 겸 저녁을 해결했습니다.

뜨끈한 국물과 이국적인 향신료가 들어가니 그제야 좀 살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싱가포르 쇼핑 필수 코스라는 ‘바샤 커피(Bacha Coffee)’ 매장에 들러 기념품도 구입했습니다. 화려한 매장 인테리어와 향긋한 커피 향이 지친 여행자의 마음을 잠시나마 달래주었습니다.
5. 여행을 마치며
인천공항에 무사히 도착함으로써 보름간의 긴 여정에 마침표를 찍었습니다.

마지막 날 컨디션 난조로 고생은 했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계획했던 대로 알프스의 대자연과 이탈리아의 문화를 가족과 함께 오롯이 즐길 수 있었던 만족스러운 시간이었습니다.
가장 아쉬운 점은 역시 군 복무 중이라 함께하지 못한 둘째 아들의 빈자리였습니다. 맛있는 것을 먹을 때마다, 멋진 풍경을 볼 때마다 “둘째도 왔으면 참 좋아했을 텐데”라는 말을 수없이 되뇌었으니까요.
둘째가 제대하면, 그때는 완전체 가족이 되어 다시 한번 이 길 위에 서 있기를 희망해 봅니다.
긴 여행기를 함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 여행에서 또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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