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05] 콜 드 발므 & 크루아 드 페르 트레킹

1. 어느덧 5일 차, 든든한 아침으로 시작

벌써 샤모니에서의 다섯째 날을 맞았습니다. 꿈만 같은 이 시간이 왜 이리 빨리 흘러가는지 야속하기만 하네요. 매 순간이 소중합니다. 오늘도 여느 때와 같이 숙소에서 든든하게 아침을 챙겨 먹었습니다. 샐러드와 빵, 그리고 삶은 달걀로 단백질까지 꽉 채운 식단입니다. 플레이팅이 조금 투박해 보일지 몰라도, 알프스를 걷기 위한 에너지원으로는 영양소가 골고루 갖춰진 완벽한 한 끼랍니다. 오늘의 특별한 메뉴에는 콜드발므가 추가되어 더욱 풍성한 아침이 되었습니다.

2. 르 투르(Le Tour)에서 시작하는 국경 트레킹

오늘은 샤모니 계곡의 가장 동쪽 끝자락, ‘르 투르(Le Tour)’ 지역을 탐방하는 날입니다. 이곳은 스위스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곳으로, 곤돌라와 리프트를 연달아 타고 ‘레 조탄(Les Autannes)’ 능선까지 단숨에 오를 수 있습니다.

오늘의 트레킹에서는 콜드발므를 경험하게 되어 정말 기대가 됩니다.

이동 계획 (Plan A vs Plan B):

  • 1안 (종주): 콜 드 발므를 지나 반대편 마을인 ‘발로신(Vallorcine)’으로 하산 후, 기차/버스로 복귀하는 코스.
  • 2안 (원점 회귀): 발므 지역을 충분히 즐기고 다시 르 투르로 내려와, 렌터카로 발로신으로 이동하는 코스.
  • 선택: 대중교통 이용의 번거로움과 시간 효율을 고려해 2안(원점 회귀)을 선택했습니다. 르 투르 승강장 하단에 아주 넓은 무료 주차장이 있어 주차 걱정은 전혀 없었습니다.
* 형광색으로 칠한 경로를 따라 이동하였습니다.

3. 안개를 뚫고 구름 위로

첫 번째 곤돌라의 기착지는 ‘샤라미용(Charamillon)’입니다. 이른 아침이라 그런지 안개가 자욱해 한 치 앞도 분간할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지난 며칠간 알프스의 변덕스러운 날씨를 겪어본 터라 크게 걱정하지는 않았습니다. “조금만 올라가면 맑은 하늘이 있겠지”라는 믿음이 있었거든요.

두 번째 리프트를 타고 최종 목적지인 ‘레 조탄(Les Autannes, 2,195m)’에 도착할 무렵, 우리의 믿음은 현실이 되었습니다. 거짓말처럼 하늘은 시리도록 푸른색으로 바뀌어 있었고, 발아래 깔려 있던 구름들이 뭉게뭉게 춤을 추며 발밑으로 흘러가기 시작했습니다. 상쾌하고도 신비로운 대자연의 아침이 우리를 반겨주었습니다.

4. 프랑스와 스위스의 경계, 콜 드 발므(Col de Balme)

완만한 평원을 따라 10여 분을 걸어가면 빨간 창문이 인상적인 ‘콜 드 발므 대피소(Refuge Col de Balme)’가 나타납니다. 재미있는 사실은 이 건물이 있는 땅은 프랑스가 아니라 스위스라는 점입니다. 샤모니 몽블랑 지역은 프랑스, 이탈리아, 스위스가 국경을 맞대고 있는데, 바로 이 능선이 프랑스와 스위스를 나누는 경계선입니다.

이른 시간에 마시는 에스프레소 한 잔이, ‘풍경을 마시는 일’과 꽤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람도 자연의 리듬 안으로 들어가야 비로소 고요해지니까요.

5. 야생화 천국, 그리고 숨겨진 비경으로

따뜻한 커피로 몸을 녹인 후 본격적인 트레킹을 시작했습니다. 이곳 발므 지역의 풍경은 그동안 봤던 거친 암벽의 몽블랑(에귀 디 미디, 락 블랑)과는 확연히 다릅니다. 완만한 초록색 알파고(Alpage, 고산 목초지)가 너르게 펼쳐져 있고, 보랏빛 야생화들이 지천으로 깔려 있어 마치 ‘알프스 소녀 하이디’가 뛰어놀 것 같은 평화로운 풍경을 선사합니다.

콜 드 발므 일대는 샤모니의 다른 트레일과 분위기가 조금 다릅니다. 암봉 사이를 파고드는 느낌이라기보다, 고지대 목초지와 완만한 능선이 길게 펼쳐져서 시야가 확 트입니다. 그래서 걷는 내내 ‘어디로든 갈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비록 야생화는 “절정 시즌”은 아니어도, 충분히 아름다웠습니다. 노란색 꽃들이 안개 사이로 점점 또렷해질수록, 마음도 같이 개이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는 ‘테트 드 발므(Tête de Balme)’ 봉우리에 도착했습니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여기서 12번 코스를 따라 내려가면 무난했겠지만, 오른쪽으로 보이는 좁고 아찔한 능선 길이 자꾸만 눈에 밟혔습니다. 모험심이 발동한 우리 부부는 과감하게 그 좁은 외길을 따라 더 깊숙이 들어가 보기로 했습니다.

6. 최고의 뷰 포인트, 크루아 드 페르(Croix de Fer)

자칫 발을 헛디디면 낭떠러지로 떨어질 것 같은 좁은 능선 길이었지만, 그 위험을 감수할 만큼 좌우로 펼쳐지는 파노라마 뷰는 ‘역대급’이었습니다.

그 길의 끝에서 마침내 우리는 커다란 철제 십자가를 마주했습니다. 바로 ‘크루아 드 페르(Croix de Fer, 철십자)’라는 곳입니다.

더 이상 나아갈 곳도, 비켜갈 곳도 없는 뾰족한 봉우리의 끝점. 왠지 모를 벅차오름과 함께, 더는 전진할 수 없다는 사실에 안도하며 잠시 쉬어가기로 했습니다. 챙겨 온 과일을 먹으며 자기 점검의 시간도 가졌고요. 지금 다시 생각해도 이번 몽블랑 여행 중 가장 아름답고 짜릿했던 길을 꼽으라면, 주저 없이 이곳 ‘크루아 드 페르’로 향하는 능선 길을 선택할 것입니다.

7. 하산, 그리고 아쉬운 점심

다시 왔던 길을 되돌아 나와 평화로운 발므의 풍경을 만끽하며 하산을 시작했습니다. 내려오는 길, 저 멀리 중간 기착지인 샤라미용 승강장이 보입니다.

다만 우리는 방향을 발로씬이 아니라 우리가 왔던 길로 돌아가기로 전환하였습니다。 오히려 이렇게 이곳 풍광을 즐기고 원점에서 차량으로 이동하는 것이 시간 효율성이 높을 것이라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내려오는 길에 저 멀리 에귀데스포셋 대피소가 보이네요。

바로 옆에 있는 ‘샬레 드 샤라미용(Chalet de Charamillon)’ 카페에서 점심을 해결하기로 했습니다. 테라스 발아래로 펼쳐지는 경치는 정말 기가 막혔습니다. “뷰 맛집”이라는 말은 이럴 때 쓰는 거겠죠. 하지만 솔직히 음식의 맛은 좀 아쉬웠습니다. 이용객이 적어서인지 조리된 음식이 아니라 전자레인지에 데워주는 인스턴트 수준이더라고요. 뭐 어떤가요, 5성급 호텔 요리보다 더 훌륭한 5성급 뷰를 반찬 삼아 먹었으니 그것으로 만족합니다.

고생해 준 우리의 등산화들, 아니 우리 부부와 함께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들어가고 있는 소중한 동반자들을 사진에 담아봅니다.

르 투르로 무사히 내려와, 우리는 다시 렌터카를 타고 다음 목적지인 ‘발로신(Vallorcine)’으로 향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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