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1] 고대로마의 흔적을 간직한 도시, 아오스타(Aosta)

1. 여행의 시작: 각자의 비행기, 하나의 목적지

마일리지를 활용해 몽블랑 여행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아쉽게도 모든 가족이 같은 항공편을 이용할 수는 없었지만, 우리 부부와 아들은 각기 다른 비행기를 타고 밀라노의 렌터카 업체에서 만나기로 했습니다. 도착 시간 차이가 크지 않아 불편함은 없었죠. 여행 기간이 16일로 길어 공항 주차비 부담을 줄이기 위해 자가용 대신 공항버스를 이용하기로 한 점도 합리적인 선택이었습니다. 우리가족 4명 완전체라면 다른 결정을 했을것 같긴 합니다. 비행기를 적게 타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엔진 가속으로 빠르게 느껴지는 관성과 하늘로 올라가면서 작아지는 지상의 물체들, 더욱 넓은 시야를 확보해나가는 순간은 여전히 설레고 긴장감을 자아냅니다.

2. 렌터카 수령: 예상치 못한 업그레이드

밀라노에 도착하여 렌터카 업체 허츠(Hertz)로 향했습니다. 처음 예약했던 차량에 날짜 오류가 있어 재예약하는 과정에서 오히려 더 저렴한 가격으로 차량을 확보하는 행운을 얻었습니다. 저희의 주된 조건은 1) 자동기어 2) 넉넉한 수납공간(큰 캐리어 1개, 기내 캐리어 1개, 큰 배낭 1개, 작은 배낭 3개) 정도였고, 차량 등급에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현장에서 결과적으로 수령한 차량은 Ford Kuga였습니다! 허츠 President’s Circle 멤버십 등급 덕분인지 모든 절차는 주차 공간에서 빠르게 처리할 수 있었고, 이코노미 클래스에서 인터미디어트 SUV 준중형 크래스로의 업그레이드 혜택을 받았습니다. 더욱이 이번 쿠가는 마일드 하이브리드 차량이라 연비 혜택도 덤이었죠.

3. 아오스타(Aosta): 알프스 속 작은 로마 도시

이제 몽블랑 트레킹의 거점인 샤모니로 향할 시간입니다. 하지만 밀라노에서 샤모니까지의 234km, 약 3시간의 거리를 한 번에 이동하기는 다소 무리라고 판단했습니다. 그래서 이동 중간에 점심 식사와 함께 잠시 쉬어갈 곳을 찾았고, 그곳이 바로 아오스타(Aosta)였습니다. 저도 이번 여행이 아니었더라면 들어보지 못했을 도시였지만, 사전 조사를 해보니 오래된 고대 로마 유적들이 산재해 있어 나름 관광지로서 인기가 있다고 하더라고요.

아오스타(Aosta)는 이탈리아 북서부 알프스 산맥에 위치한 아오스타 발레(Valle d’Aosta) 주의 주도로, ‘알프스의 로마’라 불릴 만큼 고대 로마 유적이 잘 보존된 도시입니다. 기원전 25년 아우구스투스 황제가 켈트족 살라시족을 정복한 후 ‘아우구스타 프라에토리아 살라소룸(Augusta Praetoria Salassorum)’이라는 이름으로 건설한 이 도시는, 현재도 로마 시대의 성벽, 프라에토리아 문(Porta Praetoria), 아우구스투스 개선문, 원형극장 등이 거의 완벽하게 남아있어 로마 도시 계획의 전형을 보여줍니다. 해발 583m에 자리한 아오스타는 프랑스와 스위스로 향하는 몽블랑 터널과 그랑 생 베르나르 고개의 관문 역할을 하며, 이탈리아어와 프랑스어가 공용어로 사용되는 이중언어 지역의 중심지로서 독특한 알프스 문화를 간직하고 있습니다

4. 예상치 못한 ZTL과의 첫 만남

렌터카 여행 시 항상 신경 쓰이는 것이 바로 주차 문제입니다. 특히 도심지를 이동할 경우 비싼 주차비와 혹시 모를 범칙금 등을 부과받을 수 있기 때문이죠. 이런 비용은 굉장히 본인을 자책하게 만드는 요인이 되기도 합니다. 특히 이탈리아에서는 붉은색 테두리로 둘러싸인 하얀색 원 표지판인 ZTL(Zona Traffico Limitato)이 문제입니다. 허가받지 않은 차량의 진입을 금지하는 표지판으로, 구시가지가 있는 곳에서는 어김없이 이런 ZTL 시스템이 운영되고 있다고 보시면 됩니다.

ZTL(Zona Traffico Limitato) 표지판

당초 제가 생각하기에 아오스타는 작은 마을에 불과해 이런 시스템이 운영되지 않을 뿐더러, 주차도 편하게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완전히 예상과 어긋났습니다. 바로 ZTL에 부딪힌 것이죠.구시가지 주변을 한두 바퀴 돌다 주차 안내 표지판을 발견했습니다. 이탈리아어를 모르는 저는 인공지능에 사진으로 해석을 요청했더니,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오전 8-12시, 오후 2-8시는 시간당 1.4유로 주차 티켓을 구매해 차량에 올려놓아야 하고, 그 외 시간에는 무료”라는 해석을 해주더군요. 가만히 보니 오늘은 화요일. 잘됐다 싶어 마음 편하게 주차하고 시내로 이동했습니다.

주차안내 표지판

5. 고대 로마의 흔적을 따라

옛 성벽을 따라 산책하는데 연세 지긋하신 단체 관광객 일행들 몇 팀과 마주치기도 했지만, 그래도 조용한 분위기의 마을이었습니다.

하지만 어느 모서리를 돌았더니 번화한 중심가가 떡하니 나타나면서 모든 마을 사람들이 여기로 모여 있는 것처럼 바글바글하더군요. 그 거리 이름은 Via Édouard Aubert(프랑스어로 Rue Édouard Aubert)였습니다.

로마 초대 황제 아우구스투스가 설립한 도시 성벽의 동쪽에 위치한 프라에토리아 문(Porta Praetoria)을 만났습니다. 로마 시대에는 대부분 이처럼 이중 아치문을 만들어 두 개의 성벽 사이 통로로 마차 등이 이동할 수 있도록 했다고 합니다. 3개의 창을 뚫어 망을 보는 용도로 활용했고, 당시 로마 시대 성벽의 전형을 따르고 있는 대표적인 예시라고 하네요.

트라토리아 간판 뒤쪽으로 보이는 거대한 석조물은 고대 로마 극장의 외벽 아치입니다. 시 낭송, 음악 공연 등을 무대에서 하는 용도로 활용하며 반원형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하네요. 검투 경기, 맹수 사냥 등을 주로 하는 로마 콜로세움이나 지난해 들렸던 베로나 원형경기장과는 전혀 다른 용도의 시설물인 거죠.

6. 산토르소 수도원에서 만난 중세의 위엄

중앙 거리를 끝까지 산책한 뒤, 눈으로 찍어두었던 식당이 아직 오픈 전이라 조금 더 마을 여기저기를 어슬렁거려 봅니다. 산토르소 수도원(Collegiata dei Santi Pietro e Orso)은 이 지역에서 가난한 자를 돌보았던 성 오르소 성인을 기리기 위해 9세기경에 건립한 수도원이라고 합니다.

산토르소 수도원(Collegiata dei Santi Pietro e Orso, 흔히 Sant’Orso)

이번 여행에서 이런 건축물을 처음 마주했기 때문에 유심히 살펴보게 되더군요. 하지만 파르마를 거쳐 피렌체의 수많은 성당 등을 접하고 나면 자연스럽게 무덤덤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나 보더라고요. 수도원 내부는 전체적으로 정결하고 소박한 느낌이었지만, 정면에 위치한 구조물은 상당히 위엄 있으면서도 정교하고 화려한 인상을 심어주기에 충분했습니다. 정면의 세 개 아치로 구성된 구조물은 성직자와 신자 사이의 경계를 구분하는 루드 스크린(Rood Screen)입니다. 붉은색 대리석을 사용했는데 북부 이탈리아에서 그 재료가 많이 나오기 때문이라 하네요.

산토르소 수도원(Collegiata di Sant’Orso) 내부 : 루드스크린(Rood Screen)과 그 안쪽의 합창석(choir stalls)과 제대

좌우로 쭉 이어진 목재로 만들어진 합창석(choir stalls)은 아주 정교하고 하늘로 찌를 것처럼 만든 고딕 양식의 특징이며, 성직자들의 권위를 상징하기 위함이라고 합니다. 최근 우리나라 대법원 의자 문제가 이슈가 되고 있는데 갑자기 그 생각이 스쳐 지나갑니다. 하지만 대법원 의자보다 몇십 배는 높아 보이는 이러한 권위를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던 당시 상황을 어느 정도 유추해볼 수 있지 않을까요?

7. 오스테리아 다 난도에서의 이탈리아 정통 점심

드디어 오픈 시간에 맞춰 봐두었던 식당으로 이동했습니다. (Osteria da Nando)

이탈리아 전통 식사는 **안티파스토(Antipasto) → 프리모(Primo) → 세콘도(Secondo) → 콘토르노(Contorno) → 돌체(Dolce)**의 5단계 구성으로 이루어집니다프리모는 파스타, 리조또, 폴렌타, 수프 등 탄수화물 기반의 ‘첫 번째 주요리’로 고기가 들어가지 않는 것이 원칙이며세콘도는 육류나 생선 요리로 구성된 ‘두 번째 주요리’입니다. 특히 세콘도는 단독으로 제공되며 야채 반찬인 콘토르노를 별도 접시에 주문해 함께 먹는 것이 특징입니다. 일상에서는 프리모와 세콘도 중 하나만 선택하거나 둘 다 주문하기도 하지만, 피자나 라자냐 같은 요리는 그 자체로 완전한 한 끼 식사(피아토 우니코, Piatto Unico)로 간주되어 다른 코스와 함께 주문하지 않습니다. 이러한 구조는 각 요리의 고유한 맛을 음미하고 식사 시간을 여유롭게 즐기는 이탈리아 식문화의 핵심이기도 합니다.

저희의 그동안 경험에 따르면 한 명이 세 가지 코스를 모두 시키면 절반 이상이 남습니다. 양이 상당히 많기 때문에 안티파스토와 프리모 또는 세콘도에서 가장 먹고 싶은 것 한 개씩, 필요시 추가로 한 개 더해서 3명이 가면 3-4개 정도의 음식으로도 충분합니다. 이번에도 3가지 음식을 시켰습니다. 상당히 고급스럽게 장식되어 나왔고, 설명도 구체적으로 해주더군요. 하지만 다 좋았는데 아무리 맛있게 요리했다 해도 프리모로 나온 폴렌타(Polenta)는 맛있다고 하기에는 한계가 느껴졌습니다. 옥수수 가루를 주재료로 치즈, 버섯 등 현지 재료를 활용해 1시간 동안 익혀 만들었다고 하지만 말이죠.

샤모니를 향한 다음 여정

고대 로마 도시 아오스타를 한 번 둘러보았고, 맛있는 이탈리아 전통 음식으로 배도 채웠으니 소화시킬 겸 한 바퀴만 간단히 돌고 다시 우리의 원래 목적지인 샤모니로 이동하겠습니다. 예상보다 훨씬 풍부한 볼거리를 제공해준 아오스타였습니다. 작은 마을이라고 생각했는데 2,000년 전 로마 제국의 흔적이 이렇게 온전히 남아있다니, 이번 여행의 첫 번째 발견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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