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08] 관광객이 잠든 시간, 르네상스와 독대 (피렌체 새벽 산책 & 건축 이야기)

1. 7월의 피렌체, 가장 상쾌한 시간을 걷다

어제 샤모니에서 넘어온 덕분인지, 아니면 새로운 도시에 대한 설렘 때문인지 이른 새벽 눈이 저절로 떠졌습니다. 7월의 이탈리아는 낮이 되면 타오르는 듯한 더위가 기승을 부리지만, 해가 뜨기 직전의 새벽 공기는 거짓말처럼 선선하고 상쾌합니다. 도시가 열기로 달궈지기 전, 가장 청량한 피렌체를 만나기 위해 아내와 함께 숙소를 나섰습니다.

2. 고요한 아침의 시작, 산 마르코와 안눈치아타

숙소(Il Guelfo Bianco)에서 북쪽으로 향하니 ‘산 마르코 광장’이 나옵니다. 부지런한 트램만이 정차해 손님을 기다리는 고요한 풍경을 지나, 동쪽으로 꺾어 ‘산티시마 안눈치아타 광장(Piazza della Santissima Annunziata)’에 도착했습니다.

산티시마 안눈치아타 성당은 피렌체에서 가장 존경받는 성모 마리아 성지 중 하나입니다. 화려한 관광지라기보다 피렌체 시민들의 안식처 같은 곳이죠. 이른 새벽부터 기도를 드리러 들어가는 현지인들의 뒷모습을 보며, 저희 부부도 잠시 섞여 들어가 경건한 마음으로 여행의 안녕을 빌었습니다. 광장 오른편에는 고아들의 피난처였던 ‘오스페달레 델리 이노첸티’의 우아한 아치 회랑도 볼 수 있습니다.

3. 골목 끝에 걸린 붉은 돔 (Via dei Servi)

성당을 나와 ‘비아 데이 세르비(Via dei Servi)’ 골목으로 들어섭니다. 이곳은 ‘숨은 뷰 포인트’입니다. 좁은 골목 끝, 떠오르는 아침 햇살을 받아 붉게 타오르는 두오모의 거대한 돔(Cupola)이 꽉 차게 들어옵니다. 마치 비현실적인 그림엽서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기분입니다.

4. 브루넬레스키의 미스터리: 돔은 어떻게 무너지지 않을까?

드디어 마주한 ‘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 대성당(두오모)’
1436년 완공된 이 돔은 당시 세계 최대 규모였습니다. 도대체 600년 전 기술로 어떻게 저 무거운 돔을 무너뜨리지 않고 쌓았을까요?

헤링본(Herringbone) 패턴의 비밀
브루넬레스키는 벽돌을 ‘헤링본(물고기 뼈, Spina di Pesce)’ 모양으로 엇갈려 쌓는 획기적인 공법을 사용했습니다. 수평으로 쌓는 벽돌 사이에 수직 벽돌을 끼워 넣어 서로가 서로를 꽉 물게(Locking) 만드는 방식이죠. 덕분에 거푸집(지지대) 없이도 돔이 무너지지 않고 버틸 수 있었습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 아래 인포그래픽을 참고해 보세요.

성당 앞에는 팔각형의 ‘산 조반니 세례당’이 있습니다. 두 건물 모두 흰색과 초록색 대리석 줄무늬로 비슷해 보이지만, 사실 세례당이 훨씬 형님(11세기 로마네스크 양식)입니다. 나중에 지은 대성당(고딕 양식)이 세례당과 어울리도록 일부러 비슷한 옷(대리석 패턴)을 입은 것이죠.

5. 르네상스의 진짜 얼굴, 산타 마리아 노벨라 성당

다시 서쪽으로 발걸음을 옮겨 ‘산타 마리아 노벨라 성당’으로 향했습니다. 두오모의 정면이 19세기에 완성된 것이라면, 이곳의 파사드(정면)는 ‘알베르티’라는 건축가가 1470년에 완성한 진짜 르네상스 시대의 작품입니다.

하단부의 고딕 양식과 상단부의 르네상스 양식을 자연스럽게 연결하기 위해 양옆에 ‘소용돌이 모양(Volutes)’ 장식을 넣었는데, 이는 이후 전 세계 성당 건축의 표준이 되었습니다. 수학적 비례가 주는 편안함이 느껴지나요?

6. 삶의 활기, 중앙시장(Mercato Centrale)과 가죽 시장

엄숙한 성당들을 뒤로하고 ‘중앙시장’ 쪽으로 이동합니다. 이제 막 하루를 시작하는 상인들이 분주하게 가죽 노점을 펼치고 있습니다. 달그락거리는 철제 구조물 소리와 상인들의 활기찬 인사가 골목을 채웁니다. 박제된 유적지가 아니라 살아 숨 쉬는 피렌체의 민낯을 만나는 시간입니다.

7. 메디치 가문의 영광과 좌절, 산 로렌초 성당

마지막으로 시장 바로 옆에 위치한 ‘산 로렌초 성당(Basilica di San Lorenzo)’입니다. 이곳은 피렌체를 지배했던 메디치 가문의 가족 성당이자 그들의 무덤입니다.

정면을 보면 거친 벽돌이 그대로 드러나 있습니다. 원래 미켈란젤로가 대리석으로 멋지게 장식하려 했으나, 자금 문제와 교황의 변심으로 취소되어 지금까지 미완성으로 남았습니다.

하지만 건물 뒤편으로 돌아가면 거대한 돔을 가진 ‘메디치 예배당(Cappelle Medicee)’의 웅장한 모습이 보입니다. 앞모습은 투박하지만 뒷모습은 화려한, 마치 메디치 가문의 파란만장한 역사를 보여주는 듯합니다.

8. 산책을 마치며

마지막으로 메디치 가문의 영욕이 서린 산 로렌초 성당의 거친 벽돌 파사드를 지나, 다시 숙소로 돌아옵니다. 약 1시간 30분의 산책. 고요한 새벽 공기 속에서 만난 피렌체는 낮과는 전혀 다른 깊은 울림을 주었습니다. 이제 배가 고파오네요. 늦잠꾸러기 아들을 깨워 맛있는 조식을 먹으며, 오늘 하루 르네상스의 바다로 뛰어들 준비를 해야겠습니다.


인생 2막, 부부 다이어리에서 더 알아보기

구독을 신청하면 최신 게시물을 이메일로 받아볼 수 있습니다.

댓글 달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

위로 스크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