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07] 미식과 예술의 도시 ‘파르마(Parma)’

1. 아쉬운 작별, 샤모니를 떠나며

짧지만 강렬했던 6일간의 샤모니 몽블랑 여행을 마치고, 이제는 정말 떠나야 할 시간입니다. 여행을 계획할 땐 “한 곳에 너무 오래 머무는 건 아닐까?” 고민했었지만, 막상 떠나려니 아쉬움이 진하게 남습니다. 그만큼 이곳에서의 시간이 만족스러웠다는 반증이겠지요.

오늘의 여정은 몽블랑 터널을 지나 이탈리아 피렌체(Firenze)까지 이동하는 긴 코스입니다. 한 번에 가기엔 부담스러운 거리라, 중간 기착지로 ‘파르마(Parma)’를 선택했습니다. 볼로냐, 모데나 등 쟁쟁한 후보가 많았지만, ‘세계문화유산’과 ‘치즈와 햄의 본고장’이라는 타이틀이 파르마로 핸들을 꺾게 만들었습니다.

2. 국경을 넘다: 몽블랑 터널과 이탈리아의 커피

악명 높은 몽블랑 터널 정체를 피하기 위해 아침 7시부터 서둘렀지만, 우리보다 부지런한 여행자들은 세상에 참 많더군요. 터널을 통과하는 데만 거의 1시간 이상이 소요되었습니다.

국경을 넘어 이탈리아로 들어오자마자 고속도로 휴게소(Autogrill)에 들러 에스프레소로 카페인을 수혈합니다. 단돈 1유로 남짓한 가격에 이런 퀄리티라니, 역시 커피는 이탈리아가 최고입니다!

3. 파르마 도착 & 주유 (하이브리드 렌터카의 위력)

샤모니에서 파르마까지 약 367km, 4시간이 넘는 거리를 주유 없이 강행군했습니다. 다행히 렌터카가 하이브리드 차량이라, 정속 주행(100km/h 내외) 발 컨트롤을 하니 리터당 20km 전후의 놀라운 연비를 보여주더군요. 파르마 시내에 도착해 주유소를 찾았습니다. 리터당 약 1.77유로(Super 기준), 총 91유로를 주유하며 무사 도착을 자축했습니다. (13:20)

  • 주차 팁: 구시가지 접근성이 좋은 ‘Parcheggio Toschi’ 주차장을 이용했습니다. 위치도 좋고 시설도 깔끔해 파르마 여행자들에게 추천합니다.
파르마 도착 후 첫 주유. 하이브리드 차량의 놀라운 연비 덕분에 리터당 20km 주행 성공.
△ 파르마 도착 후 첫 주유. 하이브리드 차량의 놀라운 연비 덕분에 리터당 20km 주행 성공.

4. 파르마의 맛: ‘Ristorante Gallo d’Oro’에서의 점심

금강산도 식후경, 미리 ‘The Fork’ 앱으로 예약해 둔 ‘Ristorante Gallo d’Oro’를 찾았습니다. 골목 끝에 위치한, 차분하고 격식 있는 분위기의 식당입니다. 파르마에 왔으니 이곳의 시그니처 메뉴들을 주문했습니다.

  • 토르타 프리타 (Torta Fritta): 공갈빵처럼 부풀어 오른 튀긴 빵입니다. 따뜻할 때 햄이나 치즈를 곁들여 먹으면 입맛을 돋우기에 그만입니다.
  • 프로슈토 디 파르마 (Prosciutto di Parma): 파르마가 자랑하는 숙성 생햄입니다. 접시 가득 산더미처럼 쌓여 나와 압도적인 비주얼을 자랑하더군요. 짭조름한 감칠맛이 빵과 환상적인 궁합을 보여줍니다.
  • 토르텔리 데르베타 (Tortelli d’erbetta): 리코타 치즈와 근대(또는 시금치)로 속을 채운 파르마의 전통 파스타입니다. 녹인 버터와 파르마지아노 치즈를 듬뿍 뿌려 고소함의 끝판왕입니다.
  • 오리 가슴살 스테이크 (Petto D’anatra): 부드러운 오리 가슴살에 아스파라거스를 곁들여 든든하게 배를 채웠습니다.

5. 파르마 시티 투어: 거장들의 숨결을 찾아서

든든하게 배를 채우고 본격적인 탐방에 나섰습니다. 알프스의 대자연만 보다가 오랜만에 인간이 빚어낸 정교한 건축물들을 마주하니 또 다른 호기심이 샘솟습니다.

  • 산 비탈레 성당 (Chiesa di San Vitale): 화려한 천장 벽화와 파이프 오르간, 예수님 조각상이 주는 엄숙함에 잠시 압도됩니다.
  • 테아트로 레지오 (Teatro Regio): 오페라의 거장 ‘베르디’의 고향답게 9~10월 베르디 페스티벌(Verdi Festival) 준비가 한창이었습니다. 오텔로, 맥베스… 포스터만 봐도 가슴이 뜁니다.

공연장 앞에는 파르마 치즈를 판매하는 유서 깊은 식료품점 ‘Casa del Parmigiano Reggiano’가 있어 홀린 듯 들어갔습니다. (15:04) 가게 안은 꼬릿하고 고소한 치즈 향기로 가득했습니다. 수많은 치즈 중 우리의 눈길을 사로잡은 건 바로 ’96개월(8년) 숙성’ 파르마지아노 레지아노였습니다.

보통 24개월, 길어야 36개월 정도를 먹는데 96개월이라니! 점원 말로는 이런 초장기 숙성 치즈는 요리에 뿌려 먹는 게 아니라고 합니다. 이탈리아에서는 이를 ‘명상용 치즈(Cheese da Meditazione)’라고 부르는데, 식사 후 와인이나 발사믹 식초와 함께 치즈만 조금씩 떼어 먹으며 그 깊은 풍미를 명상하듯 즐기기 때문이라네요.

한국에서는 구경조차 힘든 귀한 녀석이라 주저 없이 집어 들었습니다. 속에 콕콕 박힌 하얀 단백질 결정(티로신)이 씹힐 때마다 터져 나올 감칠맛을 상상하니 벌써 군침이 돕니다. 오늘 밤 와인 안주는 이걸로 정했습니다.

6. 영혼을 울리는 공간: 파르마 대성당

드디어 파르마의 심장, 피아자 델 두오모(Duomo Square)에 섰습니다.

파르마 대성당 (Duomo di Parma)의 외관은 12세기에 지어진 빛바랜 돌벽과 정면의 3단 아치, 그리고 하늘을 찌를 듯 솟은 63m의 종탑(Campanile)은 중세의 기사처럼 엄격하고 투박해 보입니다.

12세기 로마네스크 양식의 정수, 파르마 대성당의 엄숙한 정면(Facade)

하지만 이 무뚝뚝한 문을 열고 들어가는 순간,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집니다.

고개를 들어 돔(Dome) 천장을 바라본 순간,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습니다. 바로 파르마가 낳은 르네상스의 거장, ‘코레조(Correggio)’가 그린 프레스코화 <성모 승천 (Assumption of the Virgin)> 때문입니다.

천장이 사라지고 하늘이 열렸다. 코레조의 걸작 <성모 승천>이 그려진 돔 천장

“천장이 사라지고 하늘이 열린 것 같다.” 코레조는 원근법을 극대화하여 아래에서 위를 쳐다볼 때 인물들이 실제로 하늘로 빨려 올라가는 듯한 착시 효과를 완벽하게 구현했습니다. 이를 미술 용어로 ‘단축법’이라고 한다네요. 미켈란젤로의 천장화가 조각적이라면, 코레조의 그림은 빛과 공기가 흐르는 듯 부드럽고 역동적입니다. 왜 그가 바로크 미술의 선구자로 불리는지 눈으로 확인하는 순간이었습니다.

마침 결혼식 축가 리허설 중이었는지, 웅장한 파이프 오르간 소리와 소프라노의 목소리가 이 거대한 예술 작품들 사이로 울려 퍼졌습니다. 시각적 화려함과 청각적 전율이 만나는 순간, 종교를 떠나 인간이 만들어낼 수 있는 예술의 경지에 감동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7. 분홍빛 팔각형의 신비: 파르마 세례당 (Battistero di Parma)

대성당 바로 옆에는 눈길을 사로잡는 독특한 건물이 하나 서 있습니다. 바로 ‘파르마 세례당’입니다. 보통 세례당은 성당의 부속 건물 정도로 생각하기 쉬운데, 이곳은 그 자체만으로도 하나의 거대한 예술 작품 같았습니다.

건물 전체가 ‘분홍색 베로나 대리석(Pink Verona Marble)’으로 지어져, 햇빛을 받으니 은은하고 우아한 핑크빛이 감돕니다. 모양은 독특하게도 ‘팔각형’인데요. 기독교에서 숫자 8은 ‘7일간의 천지창조’에 ‘부활의 날(1일)’을 더해 ‘부활과 영원한 생명’을 상징한다고 합니다. 세례를 통해 새로 태어난다는 의미를 담았겠죠?

분홍빛 베로나 대리석으로 지어진 팔각형의 신비, 파르마 세례당 외관

이 건물은 1196년에 짓기 시작해서 1302년에야 완공되었다고 합니다. 무려 100년이 넘게 걸린 셈이죠. 덕분에 재미있는 건축적 특징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 잠깐 상식: 로마네스크 vs 고딕, 어떻게 구분하나요?

  • 로마네스크(Romanesque): 건물의 아래층을 보세요. 창문과 문이 ‘둥근 아치(무지개 모양)’ 형태죠? 벽이 두껍고 튼튼해서 마치 요새 같은 느낌을 줍니다. 이게 옛날 스타일입니다.

  • 고딕(Gothic): 건물의 위층을 보세요. 아치 윗부분이 살짝 뾰족해지면서 하늘을 향해 뻗어가는 느낌이 들죠? 그리고 기둥도 얇아지고 장식이 화려해집니다. 이게 나중에 유행한 스타일입니다.

즉, 건물을 짓는 100년 동안 건축 유행이 바뀌면서, 아래는 듬직한 로마네스크, 위는 세련된 고딕 양식이 공존하게 된 것이지요. 돌 하나나에 역사의 흐름이 보이는 것 같아 신기했습니다.

내부로 들어서니 우산을 펼친 듯한 16개의 돔 천장이 눈을 사로잡습니다. 그 사이사이마다 성경 속 이야기들이 아주 선명한 색감으로 그려져 있는데요, 이게 바로 ‘템페라(Tempera)’ 화법이라고 합니다.

우산을 펼친 듯한 16개 살의 돔 천장

🎨 템페라(Tempera)가 뭔가요?

유화(기름) 물감이 발명되기 전, 중세 화가들이 사용했던 방식입니다. 색을 내는 안료 가루를 ‘계란 노른자’에 개어서 그렸다고 해요. 계란이 굳으면 엄청나게 단단해지잖아요? 그래서 템페라 그림은 수백 년이 지나도 변색이 잘 안 되고, 오늘날까지도 저렇게 쨍하고 선명한 색감을 유지할 수 있다고 합니다.800년 전 화가들이 계란을 깨트려가며 이 천장화를 그렸을 생각을 하니, 그림이 조금 더 친근하고 대단하게 느껴졌습니다. 파르마에 가신다면 꼭 고개를 들어 천장을 확인해 보세요!

8. 숨겨진 보석, 산 지오반니 에반젤리스타 성당 (San Giovanni Evangelista)

파르마 대성당의 감동을 뒤로하고, 바로 뒤편에 위치한 ‘산 지오반니 에반젤리스타 성당’으로 향했습니다. 솔직히 말해 ‘대성당을 봤으니 여긴 가볍게 둘러보자’는 마음이었습니다. 하지만 성당 안에 들어선 순간, 그리고 고개를 들어 천장을 마주한 순간, 제 생각이 완전히 틀렸음을 깨달았습니다. 이곳은 파르마 대성당의 ‘부록’이 아니라, ‘완결판’에 가까운 곳이었으니까요.

코레조의 또 다른 걸작, <성 요한의 환영>

대성당의 천장화가 ‘성모의 승천’이었다면, 이곳의 돔 천장화는 코레조가 그보다 조금 앞서(1520~1524년) 그린 <파트모스 섬의 성 요한의 환영>입니다. 사진을 자세히 보시면, 구름 위에 앉은 사도들 사이로 황금빛 빛을 내뿜으며 하늘에서 내려오는(혹은 떠 있는) 예수님의 모습이 보입니다.이 그림이 대단한 이유는 바로 ‘착시 효과’ 때문입니다. 코레조는 돔의 둥근 곡면을 완벽하게 계산하여, 아래에서 올려다볼 때 예수님이 실제로 공중에 붕 떠서 우리를 내려다보는 듯한 입체감을 만들어냈습니다. 대성당 작업 전에 이미 이곳에서 원근법의 마술을 완성했던 것이죠.

재미있는 관람 포인트: 숨은 ‘성 요한’ 찾기

이 천장화의 주인공은 예수님이지만, 제목은 ‘성 요한’의 환영이죠? 그런데 정작 요한은 어디 있을까요? 알고 보니 코레조는 성 요한을 돔의 가장자리 구석, 일반 신자석에서는 잘 보이지 않고 제단 안쪽의 수도사들만 볼 수 있는 위치에 그려 넣었다고 합니다. (가장자리 구름 아래 어딘가에 숨어 있을 겁니다!) 당시 수도사들을 위한 위트 있는 배려였다고 하네요.

화려한 제단과 파르미지아니노의 흔적

돔뿐만 아니라 정면 제단(Main Altar)의 화려함도 압도적입니다. 그리고 성당 좌우의 아치형 벽면(Chapel)을 유심히 보면, 코레조의 제자이자 매너리즘 미술의 선구자인 ‘파르미지아니노(Parmigianino)’가 젊은 시절 그린 프레스코화들도 만날 수 있습니다.

대성당이 웅장한 오케스트라라면, 이곳은 섬세하고 기교 넘치는 독주곡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미술을 사랑하는 분들이라면 대성당보다 이곳을 더 높게 평가하기도 한다는데, 직접 와보니 그 이유를 알 것 같습니다.

박물관과 산 지오반니 에반젤리스타 성당(San Giovanni Evangelista)까지 둘러본 뒤, 달콤한 젤라또로 당을 충전하며 잠시 쉬어갑니다. 주차장으로 돌아가는 길, 거대한 ‘팔라쪼 델라 피오타(Palazzo della Pilotta)’를 지났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폭격의 상흔을 간직한 채 웅장하게 서 있는 모습, 그 앞 잔디밭에서 평화롭게 햇살을 즐기는 젊은이들의 모습이 묘한 대조를 이룹니다.

7. 여행의 마무리, 그리고 피렌체로

약 4시간 주차에 9.6유로. 자연이 주는 감동은 무료였지만, 인간의 역사를 즐기는 데는 비용이 따르네요. 하지만 그만한 가치가 충분했던 파르마에서의 시간이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르네상스의 꽃, 피렌체로 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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