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과 나는 여행을 자주 다닌다.
올해 여름에도 다녀왔고, 겨울에도 다녀올 예정이다.
그런데 또 내년 여름휴가 계획을 세우고 있는 남편에게 말했다.
“이제 해외여행은 1년에 한 번만 하고, 한 번은 국내여행으로 하자.”
남편은 짧게 물었다.
“왜?”
아이들 나중에 결혼한다고 하면 자금이 필요할 것 같은데, 이렇게 매년 해외여행을 다니면 언제 돈을 모으나 현실적인 걱정이 올라왔다. 그래서 “좀 줄이자”고 조심스럽게 말했더니, 남편은 단호하게 이렇게 말했다.
“자기 안 가면, 나 혼자서라도 간다!”
그 말에 나는 한동안 아무 대꾸를 못했다. 말로 반박할 수도 없고, 마음으로 이해하기도 어려웠다.
‘왜 저렇게까지 여행을 가고 싶어 할까?’
어느 날 책장에 꽂혀 있던 김영하 작가의 『여행의 이유』가 눈에 들어왔다. 보는 순간, ‘그래, 이 책이다!’ 싶었다.
남편과 해외여행 얘기를 했던 그날, 아무 말도 못했던 답답함을 이 책이 풀어주지 않을까? 그런 기대감으로 읽기 시작했다.
분명 여행을 좋아하는 우리이지만, 서로의 ‘여행의 의미’는 다를 것이다.
나는 먼저 나의 ‘여행의 이유’를 찾고 싶었다. 작가의 생각을 읽다 보면 내 마음도 말로 표현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아버지는 여행은 배움이어야 한다는 인류의 오랜 믿음을 따랐다.”
(김영하, 『여행의 이유』, 문학동네, 2019, p.29)
이 부분을 읽고 내가 성인이 되기 전에 다녔던 ‘수학여행’이 떠올라 표시해 두었다. 그 시절 여행은 곧 배움이었고, 배움은 곧 기록이었다. 보고서처럼 정리해야 비로소 여행이 완성되는 느낌. 그때의 나는 여행을 “즐기는 일”이라기보다 “잘해내야 하는 일”로 받아들이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삶이 끝없는 이주일 때, 여행은 사치였다.”
(김영하, 『여행의 이유』, 문학동네, 2019, p.21)
‘신혼여행’이 나에게는 첫 해외여행이었다. 부모님에게 여행은 사치에 가까웠고, 대학생이 되어서도 도전적인 성격이 아니었던 나는 멀리 떠나는 걸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그런 내가 신혼여행지를 ‘스위스’로 정하게 된 건 남편의 성향 덕분이었다. 당시 유행하던 휴양지 대신 “휴양 말고 관광을 가자”고 했고, 해외여행 경험이 없던 나는 남편의 의견대로 정했다. 그때는 파격적이었지만 지금 생각하면, 그 선택은 ‘탁월’했다.
“문득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조금 더 알게 되는 것.”
(김영하, 『여행의 이유』, 문학동네, 2019, p.51)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조금 더 알게 되는 것.’ 나에게 여행이 정말 그랬던 적이 있었나?
여행지는 익숙하지 않은 곳, 즉 나의 홈그라운드가 아니다. 익숙한 공간에서는 있었는지조차 인식하지 못했던 나의 감각이 되살아나는 걸 여행지에서 자주 느낀다. 낯선 언어, 낯선 거리, 낯선 규칙들 속에서 나는 내가 무엇을 불편해하는지, 무엇에 쉽게 안도하는지, 어떤 순간에 설레는지 더 또렷하게 알게 된다.
“집은 의무의 공간이다.”
(김영하, 『여행의 이유』, 문학동네, 2019, p.63)
내가 완전 공감하는 부분 중 하나다. 여행지에 도착해 호텔 문을 들어서는 순간, 편안하고 가벼워지는 기분.
그건 단순히 좋은 침대 때문이 아니라 의무의 공간에서 벗어났다는 해방감 때문이다.
집에 있으면 해야 할 일이 늘 눈에 밟힌다. 설거지, 빨래, 청소 같은 즉각 처리 가능한 일도 있고, 큰맘 먹고 언젠가 해치워야 할 해묵은 숙제들도 있다. 그런데 호텔에서는 그 의무들이 잠시 사라진다.
“이제부터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된다.”
그 문장이 내 몸을 먼저 가볍게 만든다.
“여행은 … 과거와 아직 오지 않은 미래로부터 끌어내 현재로 데려다놓는다.”
(김영하, 『여행의 이유』, 문학동네, 2019, pp.81–82)
여행을 가면 한국에서의 삶은 모두 잊혀진다. 여행지에 적응하기 위해 모드 전환을 하는 것처럼.
가족과 여행을 가면 한국에서의 일은 거의 얘기하지 않는다. 미래의 이야기, 과거의 이야기들도 잘 꺼내지 않는다.
여행지에서 경험하는 모든 것들이 나의 감각을 꽉 감싸쥔 것처럼, “현재”만 말한다.
여행지에서의 이야기만으로 충분하기 때문이다.
책을 읽기 시작할 때 찾으려 했던 나의 ‘여행의 이유는 결국 이것이었다. 해방감.
그리고 알게 된 사실이 하나 더 있다. 남편은 정말로 호모 비아토르Homo Viator, 여행하는 인간이라는 것.
아무래도 당분간 해외여행을 줄일 수는 없을 것 같다. 이 책을 읽으며 남편의 생각에 완전 ‘동감’하게 되었으니까.
참고자료
김영하. 『여행의 이유』. 문학동네,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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