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길버트

1주일 만에 헬스장에 갔다. PT샘과 운동을 하는데 샘이 하라는 동작을 따라하기가 너무 힘이 들었다. 15개씩 3세트를 해야 하는데 전혀 할 수가 없었다. 그런 나를 보며 샘이 물었다. “회원님, 힘 드세요?”
“네, 조금만 쉬었다 할게요. 헉헉헉.”
운동량이 많은게 아닌데도 이미 땀으로 흠뻑 젖었다.
“오랜만에 하니까 너무 힘드네요.”
“회원님, 왜 그동안 안 오셨어요?”
“남편이 운동하다 다친 이후로 남편이 안 가니까 저도 같이 놀다가 안오게 되더라고요(머쓱).”
“그래도 회원님은 혼자라도 오셔야죠.”
간신히 50분의 개인운동을 끝냈다.

혼자라도 운동을 하러 갔어야 했는데, 남편이 안 간다고 나도 덩달아 가지 않았다.
내가 운동을 싫어해서 그런 것도 있겠지만, 혼자 가면 심심하다.
남편이랑 같이 가면 기구 운동 한번 하고, 남편 한번 보러 가고, 기구 운동 한번 하고, 남편 한번 보러 가고.
이렇게 서너번을 하면 1시간이 훌쩍 지나간다.
그러고 보니 남편과 나는 평일이든 주말이든 저녁 먹고든, 저녁 먹기 전이든 아무때나 운동을 갔다.
언제든 운동을 같이 갈 수 있는 사람.

다음날 남편이 약속으로 늦게 오는 바람에 혼자 운동을 했다.
운동을 하고 오는데,
‘나 퇴근하고 말 한마디 안했네!’ 를 깨달았다.
오늘은 sns로만 대화를 했고, 소리내어 말 한적이 한번도 없었다.
늦은 시간 내 얘기를 들어줄 수 있는 사람.

운동하러 가면 탈의실에서, 기구 앞에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꽃을 피우는 아줌마들을 보면 가끔 부럽기도 하다.
‘나도 친구한테 같이 하자고 할까?’
이런 생각이 잠깐 들기도 하지만, 친구랑 같이 하면 난 분명 불편해 할 게 뻔하다.
일이 생겨 못 가게 되면 못 간다고 연락해야 하고, 운동만 하고 싶은데 이야기를 해야 할 때도 있겠고,
아무리 편한 사이여도 내 마음대로 할 수가 없을 때가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그런 마음이 금새 사라져 버린다.
아무 말 하지 않아도 나의 할 일에 집중 할 수 있게 하는 사람.

‘친구’, 아이 낳고 현재의 삶을 살다보니 초중고 친구가 남아있지 않다.
초중고 친구의 자리를 아들 친구 엄마, 직장 동료가 채웠지만, 그래도 어린 시절에 함께 보냈던 친구가 그리울 때가 있다.
이런 마음의 빈자리를 채워주는 사람.

아이들이 대학생이 되니 나에게 주어지는 시간이 많아졌다.
그 시간을 나는 주로 남편하고 보낸다.
그래서 무엇을 배운다해도 서로에게 양해를 구해서 날짜를 정한다.
주말에도 남편과 나는 둘이서 무엇을 할지 같이 고민하고 결정한다.
우리에게 시간이 많고 서로의 건강이 걱정되어 헬스를 등록하게 된 것이다.
서로의 건강을 걱정해주는 사람.

기존 블로그에서 여기로 옮기면서 카페고리를 어떻게 정할까? 고민을 하다가, 내가 좋아하는 빨간 머리 앤으로 하자고 했다.
“자기가 좋아하는 이름이니까 자기는 앤으로 하고, 나는 그럼 뭘로 하지?”
“길버트로 해.”
“길버트가 누군데?”
“헉! 길버트를 몰라? 빨간머리 앤의 남편이잖아. 어렸을 때 만화 안 봤어?”
“안봤지.”
“그럼 뭐 봤어? 미래소년 코난 봤어? 모래시계요정 봤어?”
“미래소년 코난 봤지.”
“미래소년 코난의 여자친구 이름이 뭐였지?”
“글쎄?”
“…”
“나나 아니야?”
“그런가.. 그럼 길버트로 한다.”
나는 앤 다이어리로, 남편은 길버트 다이어리로 정했다. 그 이름 만으로 감동이 밀려온다. 길버트라니..
어렸을 때 만화 주인공 ‘길버트’는 못생긴 남자애들 중에서 단언코 눈에 띄는 똑똑하고 잘 생긴 아이였다. 그리고 앤을 좋아하는 남자아이. 그 이름 만으로도 설렌다.
그 옛날 어린 나를 설레게 했던 그 이름이 어울리는 사람.

사랑했던 남편은 이제는 나에게 가장 소중한 베스트 프렌드가 되어있다.
언제든 운동을 같이 갈 수 있는 사람.
늦은 시간 내 얘기를 들어줄 수 있는 사람.
아무 말 하지 않아도 나의 일에 집중 할 수 있게 하는 사람.
‘친구’의 빈자리를 채워줄 수 있는 사람.
서로의 건강을 걱정해 주는 사람.
그 옛날 어린 나를 설레게 했던 그 이름이 어울리는 사람.

그런 사람이 나에게는 ‘나의 길버트’ 다.
가장 소중한 베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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