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

오늘은 어디로든 나가야 한다.
만약 나가지 않으면 길버트는 분명 어스름한 오후가 될 무렵 나에게 짜증을 낼 것이기 때문이다.
아침을 먹으면서 어디로 갈 것인지 이야기했는데, 쇼핑중독 중인 길버트는 쇼핑하러 가자고만 한다.
쇼핑중독인 길버트와 쇼핑하고 싶지는 않아서 길버트가 절대로 반대하지 않을 장소를 제안했다.
“불암산 가자.”
길버트의 귀가 쫑긋해 지는 것이 보인다.
“그래?”
“그런데, 정상까지 꼭 가려고 하지 않을거라고 약속해.”
“내가 언제 정상을 가자고 했어. 힘들면 바로 내려오자고~~”
우리는 간편하게 츄리닝을 입고 물2병을 갖고 출발했다.
초입부는 늘 가던 나비정원이여서 가뿐히 갈 수 있는 곳이다.
나비정원을 지나 산 깊숙한 곳으로 점점 들어갔다.
산 속으로 들어가니 등산을 온 사람들이 참 많다.
어떤 모임인지 알수 없는 아줌마와 아저씨들의 모임.
어린 아들 두명과 같이 온 엄마와 아빠
중학생 친구 둘 등

우리 아들들이 어렸을 때(초등 저학년) 같이 등산을 하면 지나가는 어르신들이 이런 말을 하곤 했었다.
“기특하네. 엄마아빠랑 같이 왔어?”
“아이고, 이뻐라. 형아하고 동생하고 비슷하게 생겼네.”
이런 저런 말들을 하며 지나가곤 했는데, 어느날은 1000원 지폐를 아이들의 손에 쥐어주던 할아버지도 계셨다.
이제는 아들들 없이 우리 둘이 산을 오르니 부모님과 같이 온 어린 아이들을 보면 그 당시 어르신이 하시던 말을 나역시도 하고 있다.
“엄마 아빠랑 같이 왔어? 어머나 예뻐라.”

우리는 적당한 곳에서 집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그런데 가면 갈수록 힘은 들지만, 발은 계속 앞으로 가기를 원하고 있었다.
길버트가 뒤에서 나에게 떠보는 말인지 모를 말을 했다.
“그만 돌아갈까?”
‘아니, 이왕 왔으니 올라가자.”
“힘들지 않아? 힘들면 그만 가도 괜찮고..”
걸어가면서 위로 고개를 들어보니 내 머리 위, 바로 위에 있는 정상을 보았다.
저정도면 갈 수 있을 것 같은데… 이런 마음으로 그냥 가기로 했다.
한발씩 천천히 한참을 걸어가니 정상이 코앞에 있다.
힘들어서 아무말도 할 수 없을 정도에 이르니 정상에 도착해 있다.
우리는 정상에서 사진도 찍고 뜨거운 태양을 피해 그늘에서 잠깐 쉬었다 가기로 했다.

불암산은 정상에서 조금더 올라가면 큰 바위덩어리가 있어서 밧줄을 잡고 올라 갈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여기까지.
잠깐 그늘에서 쉬고 집으로 가기 위해 일어섰다.
일어서니 정상위 바위를 내려오려고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는 것이 보였다.
20대 키가 큰 학생이 줄을 잡고 내려오려 하고 있었고, 바로 그 뒤에 사람들이 소리를 질러 그 곳을 쳐다봤다.
세상에. 그 학생이 양팔로 줄을 잡고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것이다.
암벽을 내려오기 위해 손으로는 줄을 잡고 발로는 바위를 짚으면서 내려와야 하는 것을 모르고 있었던지.. 거기서 줄만 잡고 있다니..
그 학생도 놀래고, 함께 온 친구들도 놀래고, 주위 사람들도 모두 놀랬다.
그 학생이 내려오는 것을 보고있는 것이 서로에게 부끄러울까봐 볼 수가 없었다. 잘 내려왔겠지.. 잘 내려오지 못할 이유가 전혀 없으니..

정상을 찍고 내려오는 발걸음이 가볍지가 않다.
배는 고프고 다리는 후덜거리고…
후덜거리는 다리를 붙잡고 우리는 집 방향으로 하산의 길을 선택했다.
내려가면서 길버트가 말했다.
“자기가 운동해서 그런지 나보다 산을 더 잘 타는것 같아!”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아닌것 같기도 하고..
나도 의도하지 않았지만, 정상까지 가게 된 등산. 나역시 의외다.
비록 다리에 힘은 풀렸지만, 기분은 아주 개운하다.

하지만, 나의 이 개운한 마음을 길버트에게 들키면 안된다.
내려오는 길에 아니나 다를까.. 길버트는 100대 명산의 첫번째 산을 오른거라며.. 다음엔 어느 산으로 가야하는지…
100대 명산의 도장깨기를 시작했다며… 길버트가 신이 나있다.
아무래도 다음주부터 바로 산에 가자고 할 판이다.
이것이 길버트에게 내 기분을 들키면 안되는 이유이다.

길버트. 난 100대 명산은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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